​[제5화] 거실의 이방인, 아빠라는 이름의 손님

​토요일 오전 11시. 평소 같으면 부하 직원들의 주간 보고서를 검토하며 날을 세웠을 시간이지만, 집에서의 나는 갈 곳 잃은 유령처럼 거실을 배회한다.

​안방에서 아내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눴던 어제의 온기는 간데없고, 이제 내 앞엔 거대한 성벽처럼 닫힌 두 아들의 방문이 서 있다.

​# “밥 먹었니?”라는 취조

​큰애는 이제 고등학생, 둘째는 중학생이다. 한때는 내 퇴근 소리에 현관까지 버선발로 뛰어 나오던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녀석들에게 아빠는 그저 ‘가끔 용돈을 주고, 가끔 잔소리를 하는 거실의 손님’ 정도인 듯하다.

​닫힌 문 너머로 들리는 빠른 타자 소리와 친구들과의 웃음소리. 그 활기찬 세계에 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던진 한마디는 고작 이렇다.

​”밥 먹었니?”

​”네.”

​대화는 거기서 끝이다. 취조하는 형사와 단답형으로 일관하는 용의자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대기업에서 수십 명을 앉혀놓고 한 시간 넘게 회의를 주재하던 팀장의 언변은, 사춘기 아들 앞에서는 0개 국어가 된다.

​# 떡볶이 한 접시에 담긴 평화협정

​점심 무렵, 아내가 외출하며 미션을 남겼다. “애들 데리고 점심 좀 챙겨 먹여.”

​나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녀석들이 좋아하는 동네 맛집 떡볶이와 치킨. 거실 테이블에 음식을 차려놓고 짐짓 무심한 척 소리쳤다. “나와서 먹어라.”

​주뼛주뼛 나온 녀석들과 둘러앉은 식탁. TV 소리만 공허하게 울리는 가운데, 나는 슬쩍 요즘 유행하는 게임 이야기를 꺼내 본다. 사실 어제 퇴근길에 후배 사원에게 속성으로 과외받은 내용이다.

​”그… 요즘 그 게임은 시즌 업데이트 했니?”

​작은놈의 눈이 동그래진다. “어?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 찰나의 눈맞춤. 직장에서 느끼던 서늘함이 잠시 잊히는 순간이다. 대단한 훈계나 인생 조언은 필요 없었다. 그저 녀석들의 세계에 아주 작은 발을 하나 들여놓는 것, 그것만으로도 식탁의 공기는 조금 미지근해졌다.

​# 11년 뒤, 녀석들의 기억 속에 나는

​떡볶이 국물을 닦으며 생각한다. 10여 년 뒤 은퇴를 하고 나면, 나는 녀석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돈 벌어다 주느라 바빴던 사람’보다는 ‘가끔 말 안 통하는 농담을 던져도 같이 떡볶이를 먹어주던 사람’이고 싶다.

​회사에서의 직급은 은퇴와 함께 반납하겠지만, ‘아빠’라는 직급은 정년이 없다.

오후가 되자 녀석들은 다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은 다시 닫혔지만, 아까보다는 덜 차갑게 느껴진다. 나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창밖을 보았다. 팀장이 아닌, 아빠의 주말이 이렇게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