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와의 폭풍 같은 회의가 지나간 뒤, 우리 팀의 결속력은 더 단단해진 줄 알았다. 적어도 나 혼자만의 착각은 그랬다. 팀원들을 지키기 위해 내 인사권까지 담보로 잡았던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를 꽤 괜찮은 리더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균열은 가장 조용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팀의 브레인이자 내가 가장 아끼던 최 대리가 퇴근 무렵 내 자리로 왔다. 평소와 다른 딱딱한 표정.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 커피 한 잔을 권했지만, 그는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저, 이번에 새로 신설되는 전략기획본부 TF로 지원했습니다. 오늘 인사팀 승인 났다고 연락받았습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전략기획본부. 그곳은 지난번 회의에서 나를 거세게 몰아세웠던 전무가 직접 관할하는 곳이다. 내가 팀원들을 지키겠답시고 전무와 각을 세우고 있을 때, 내 등에 가장 가까이 있던 최 대리는 전무가 내민 구명보트에 올라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시대가 변했습니다, 팀장님.”
당혹감을 감추고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지난 인사 시즌의 공포보다 더 서늘했다.
”팀장님이 저희를 생각해주시는 건 압니다. 하지만 팀장님의 방식은 너무 위태로워요. 전무님 눈 밖에 난 팀에 남아서 제 커리어를 같이 도박판에 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팀장님은 ‘의리’라고 하시겠지만, 저에게는 ‘정체’로 느껴집니다.”
’정체’. 20년 넘게 조직을 위해 헌신하며 쌓아온 나의 리더십이, 젊은 후배에게는 앞길을 가로막는 낡은 장애물로 치부되는 순간이었다. 전무에게 당당히 맞섰던 내 모습이, 최 대리의 눈에는 그저 ‘은퇴를 앞둔 노병의 무모한 고집’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 텅 빈 사무실의 온도
최 대리가 나간 뒤, 사무실은 불 꺼진 복도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아들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느꼈던 그 미지근한 평화조차 사치였나 싶다.
나는 후배들을 위해 방패를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후배들은 그 방패 뒤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나갈 구멍을 찾고 있었다. 50대 팀장의 진심은 종종 이렇게 번역의 오류를 일으킨다. 나의 ‘보호’가 누군가에겐 ‘간섭’이 되고, 나의 ‘희생’이 누군가에겐 ‘부담’이 되는 서글픈 현실.
# 거울 속의 이방인
화장실 거울 앞에서 다시 나를 마주한다. 전무와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는 팀 안에서 고립된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자산을 관리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건, 내가 믿고 있는 ‘옳음’이 지금 세대에게도 ‘옳음’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넥타이를 풀어 책상 위에 던져 놓았다. 오늘은 아내에게 맥주 한 잔 하자고 먼저 연락해야겠다. 누군가의 분노보다, 믿었던 이의 냉소가 더 견디기 힘든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