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잔인한 경제학

​2176년 3월의 서울, 대기는 미세먼지와 나노 입자가 뒤섞여 눅눅한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강남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자기부상 레일 위로는 최신형 ‘아이리스-9’ 행정 로봇들이 매끄럽게 미끄러지며 도시를 관리했다. 그들은 지치지 않았고, 실수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존엄’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상 150층의 마천루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영동포의 어느 철거 현장, 스물여섯 살의 지한은 삐걱거리는 무릎을 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야, 강지한!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 옮겨! 해 지기 전에 끝내야 일당 나올 거 아냐!”

​현장 소장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장의 곁에는 구식 물류 로봇 ‘비스트-2’ 한 대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 로봇은 짐을 나르는 대신, 붉은 센서를 깜빡이며 인부들의 작업 속도를 감시하고 있었다.

​”로봇 쓰면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을…”

​지한이 땀에 젖은 장갑으로 이마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노련한 인부가 코웃음을 쳤다.

“이놈아, 저 로봇 한 대 수리비가 네 한 달 치 월급보다 비싸. 관절에 기름칠 한 번 하는 비용이면 우리 같은 놈들 대여섯 명은 부리는데, 어떤 건축주가 기계를 이 험한 바닥에 굴리겄냐?”

​그것이 22세기의 잔인한 경제학이었다. 지능이 필요한 일은 AI가 점령했고, 정교한 노동은 고가의 로봇이 차지했다. 인간에게 남겨진 것은 ‘로봇을 투입하기엔 가성비가 맞지 않는’ 비천하고 위험한 육체노동뿐이었다.

​지한은 다시 허리를 숙여 폐콘크리트 더미를 들어 올렸다. 낡은 강화 외골격(Exoskeleton)이 지지직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족히 10년은 된 중고 모델이라 보조 동력은 이미 수명을 다한 지 오래였다. 이제 이 기계 수트의 역할은 근력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한의 척추가 부러지지 않게 붙들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점심시간, 지한은 편의점에서 산 합성 단백질 바를 씹으며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화면 속에서는 깨끗한 수트를 입은 AI 앵커가 0.001%의 오차도 없는 발음으로 ‘인류의 완전한 노동 해방’과 ‘유토피아의 도래’를 찬양하고 있었다.

​지한은 씁쓸한 맛이 감도는 단백질 바를 삼켰다. 그의 손등에는 긁힌 상처에서 나온 붉은 피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완전한 노동 해방. 그것은 기계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기계보다 싼값에 몸을 파는 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농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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