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7시 15분. 거울 속의 사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윈저 노트를 완성한다. 20년 넘게 반복해 온 이 짓은 이제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20년 전 그 청년이 아니다. 눈가에 자리 잡은 주름은 훈장이라기엔 조금 깊고, 정수리 위로 희끗하게 올라온 불청객들은 이제 염색약으로도 다 가려지지 않는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하다는 ‘대기업 팀장’이다.
# 위와 아래, 그 좁은 틈바구니에서
사무실에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예전엔 내 발소리에 팀원들이 긴장하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이제는 내가 그들의 눈치를 본다.
”팀장님, 이번 기획안 컨펌 부탁드립니다.”
MZ세대 팀원이 내미는 태블릿 PC 앞에서 나는 짐짓 쿨한 척 안경을 고쳐 쓴다. 속으로는 ‘라떼는 말이야, 이런 건 밤새워서 보고서로 뽑아왔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꾹 삼킨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처절한 사투다. 이 좁은 책상 위에서 나는 위로는 임원들의 실적 압박을 견디고, 아래로는 ‘워라밸’을 외치는 후배들을 보듬어야 하는 샌드위치 운명이다.
# 11년, 그리고 남겨진 시간
문득 달력을 본다. 정년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11년 남짓. 누군가는 “아직도 많이 남았네”라고 하겠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모래시계 속 줄어드는 모래알처럼 선명하다. 20대엔 회사가 전부인 줄 알았고, 30대엔 성공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50대가 되어보니 이제야 질문이 생긴다.
”이 넥타이를 풀고 난 뒤의 나는 누구인가?”
집에 돌아가면 두 아들은 각자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아내는 드라마에 열중해 있다. 거실 소파는 내 차지지만, 때로는 그 넓은 소파가 광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 다시, 첫 문장을 쓰며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매일 아침 단단하게 넥타이를 매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이 시대 수많은 ‘팀장님’들과 ‘가장’들에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을 건네고 싶어서다.
나의 50대는 퇴보가 아니라, 가장 나다운 속도를 찾아가는 ‘재배치’의 시간이다. 자, 이제 로그인을 했으니 나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